산업시설물 PSA(Probabilistic Safety Analysis)의 필요성
▲ 이세혁 KICT 구조연구본부 수석연구원
들어가며
산업시설이란 기업의 생산 활동을 위해 필요한 사회 기반 시설로 과거에는 공업단지로 불렸으나 근래에는 산업시설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2년 대규모 부지를 요하는 중화학공업 등으로 구성된 울산공업단지를 시초로, 1990년대 이후 소수 전문 인력을 갖춘 첨단·정보산업의 발달로 전국적으로 산업단지가 조성되었다. 다양한 산업시설물 중 중화학공업과 같이 큰 규모를 갖춘 대표적인 곳은 울산과 여수가 있다.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온산공업산업단지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정유·화학산업단지가 구성되어 있다. 울산산업단지와 나란히 큰 규모를 자랑하는 여수국가산업단지는 석유화학단지 단일 규모로는 세계 1위 규모이며, 산업단지로서도 동양 최대 규모이다. 두 산업단지는 1970년대에 개발이 시작되었고, 최근에는 40년이 넘는 노후 설비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200여 건의 크고 작은 폭발 및 화재 사고와 이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하였으며, 여수산업단지의 2021년 산재 신고는 최소 72건으로 파악되고 있다.
산업시설에서 발생하는 재난·재해 사고는 대부분 폭발과 화재이지만, 대규모 두 산업단지 인근인 2016년과 2017년에 발생한 경주·포항지역 지진으로 인해 경각심과 더불어, 특정 업체에서는 자발적으로 시설물 내진 성능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부 움직임이다. 지진 위험도에 관한 많은 연구가 수행되어 온 원자력 발전소와 달리, 산업시설은 지진에 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지진은 매우 큰 파급력을 가진 자연재해이며, 특히 산업시설에 지진으로 피해가 발생하면 폭발과 화재로 이어지는 연쇄 재해(Na-Tech, Natural Hazard Triggering Technological Disaster) 발생 가능성이 있다. 이는 큰 사회적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1999년 터키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산업 시설물에서 탱크 화재가 발생하였으며, 2011년 일본에서도 지진으로 인한 석유화학 탱크 폭발이 발생한 사례가 있다. 이 글에서는 원전 분야의 지진에 대한 확률론적 안정성 평가(PSA, Probabilistic Safety Analysis) 방법을 소개하고, 산업시설물 지진 PSA 기법 개발 현황 및 추후 지진 유발 폭발 및 화재와 같은 연쇄 재해 PSA 평가를 위한 향후 연구 방향성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PSA(Probabilistic Safety Analysis)
PSA는 미국 EPRI(Electric Power Research Institute)를 중심으로 개발되었으며, 원자력 분야에서는 설계초과지진에 대한 원전 안정성 입증을 위해 필수적으로 수행된다. 원전의 Seismic PSA(SPSA)는 크게 Level 1, 2, 3으로 나누어져 있다. Level 2와 3은 원전 부지 밖의 평가를 수행하는 것이며, Level 1은 노심 파괴 확률 산정이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 원전의 노심이 파괴될 경우 방사선 유출이라는 심각한 사고를 초래하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노심파괴 확률을 평가하는 SPSA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원전이 위치한 부지에 대한 지진 재해도를 산정하고, 원전 부지 내 모든 시설 및 설비들에 대한 지진 취약도를 필요로 한다. 원전 시스템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ETA(Event Tree Analysis, 사건수목 해석)와 FTA(Fault Tree Analysis, 고장수목 해석)가 사용된다. FTA는 하위 시스템의 모든 설비들의 관계도를 표현하며, ETA는 지진 유발의 하위 시스템 파괴확률을 이용하여 지진 사고 경위 시나리오를 표현한다. 최종적으로, 시스템에 대한 분석과 지진 재해도의 합성곱(Convolution)을 통해 노심의 연 파괴 빈도 확률이 산정되게 되며, 이를 이용하여 원전의 안전성 평가가 이루어진다(그림 1).
산업시설물 PSA 적용 가능성 검토
원전과 달리 산업시설은 그 종류가 다양하며, 가장 큰 차이점은 핵심 설비의 부재이다. 원전의 경우 노심의 안전이라는 최우선 목표가 있지만, 산업시설의 경우 공정에 따라 특성도 다를 뿐만 아니라 핵심 설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공정 과정의 여러 설비가 동일하게 중요하며, 이러한 이유로 원전 PSA를 바로 적용할 수 없다. 또한, 국가시설인 원전과 달리 산업시설은 민간에서 운영되는 경우가 많으며 내부 사건·사고 또한 폐쇄적인 특성으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건 수목과 같은 사고 경위 분석이 필요한 경우 적용이 쉽지 않다.
산업시설물을 위한 PSA 기술 개발
산업시설 시스템 리스크 평가를 위해서는 정점 사건의 파괴확률 산정을 목표로 한다. 그 관계를 표현하는 고장수목이 적용하기 쉽고, 정점 사건으로는 다양한 산업시설의 일반적 적용성을 위해 특정 설비의 파괴가 아닌 운영과 관련된 사건(예: 운영 정지)이 적합하다. 정의된 정점 사건에 대한 고장수목 구축을 위해서는 공정 파악이 필수적이며, 이때 PFD(Process Flow Diagram), P&ID(Piping and Instrumentation Diagram) 등을 참고하여 단위·부공정의 기초 설비와 전체 공정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구축된 고장수목은 기초사건에 입력된 설비들의 지진 취약도 정보를 기반으로 파괴확률을 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중간 사건에 해당하는 하위시스템의 파괴확률을 산정하거나 특정 하위시스템이 파괴되었을 때의 정점 사건 확률 혹은 관련 기초 설비들의 파괴확률 등을 역으로 산정하기에는 용이하지 않다. 이러한 유연한 의사결정을 수행하기 위해 구축된 고장수목을 베이지안 네트워크(Bayesian Network, BN)로 변환하여 사용한다(Zwirglmaier, 2016). 확률론적 시각 도구인 BN은 2000년대에 들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의사결정 방법론으로서, 확률변수 간의 관계를 CPT(Conditional Probability Table)로 정량화하고 이를 통해 모든 변수의 확률을 산정한다. 또한, 특정 변수에 대응하는 사건 정보가 주어졌을 때 주어진 정보에 기반한 다른 변수들의 확률이 재산정되어 그변화를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그림 2). 그림 3은 설명한 일련의 과정을 나타낸다.
산업시설물 PSA의 미래 방향
앞선 방법론은 대상 산업시설의 공정 프로세스 기반 고장수목 연계 BN 구축 과정을 소개하였다. 이 기법은 운영 정지 시 하위시스템 혹은 설비들의 원인 순위 결정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지진 재해 대응안 수립 혹은 보수·보강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론은 베이지안 네트워크 특성상 기존 원전 PSA보다 유연하며, 향후 지진 유발폭발·화재와 같은 연쇄 재해와 쉽게 연계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원전 설비들의 지진 취약도가 구축되어 온 것과 달리, 다양한 산업시설과 그에 해당하는 많은 설비들의 지진 취약도는 구축되어있지 않은 실정이다. 많은 설비들의 지진 취약도 구축 및 맵핑 기술 개발과 더불어 연쇄 재해연구가 지속된다면 복합 재난재해에 대한 산업시설물의 안전한 미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